'루'에 해당되는 글 4건
- 2023.11.25 231029, 1주기
- 2018.07.17 높새바람같이는
- 2015.01.15 술들
- 2012.05.17 잉여와 초과로 도래하는 일기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어. 행복하려고 했던 것. 삶을 살기로 했던 것. 이런 게 잘못된 게 아니니까. 배가 침몰하고 숙소가 무너진 것이 수학여행의 문제가 아니듯. 인파가 운집한 날 일어난 사건과 사고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듯. 문명사회에서. 체제의 방임과 부재가, 허점과 기만이 이 삶을 살아보려 하던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듯. 나의 애도는 이런 형식이야. 더 크게 웃고. 더 힘껏 축제하는 게 나의 애도야.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 나의 애도야. 떠난 이들과 다를 것 없이 계속 살아가는 게 나의 애도야. 너희가,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보여주는 것이 나의 애도야. 행복하려고 살아보던 사람들을 기리는 건 금지와 엄숙주의가 아니니까. 살아보려고 하는 건 잘못이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문명의 가치를 믿으니까. 그래서 실망하고, 화를 내고, 책임을 물을 거니까. 더 나아지길 요구할 거니까. 나아지려고 애써볼 거니까. 조금 더 살아보려고, 조금은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할 거니까. 그래서 불행한 어느 하루에도 힘주어 웃어볼 거니까. 정말이야.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으로 할로윈 파티를 한 건 2015년이거든. 이젠 2023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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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한 선생님이 회사에 오셨다. 당신 시를 네 편 낭독하셨는데... 선생님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울고 싶었던 것 같아. 결국 두 번째 시 낭독 들을 때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왜 취업했냐는 물음에 나는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걸음해주셔서 고맙다고 잘 부탁한다고 하는 내 사수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로 대답했고 팀 인원보다 부족하게 가져온 당신 시집을 굳이 나에게는 꼭 줘야겠다며 따로 서명을 하셨다. 몇 년에 한 번을 만나도 이렇게 나를 품어준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내게 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세계를 등지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버린 내 선택과 결정에 나는 한순간이라도 완전히 떳떳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이 직업도 내게는 간절했고 전력을 쏟은 일이었지만 준비를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음 한켠의 부채의식과 엷은 절망이 가시질 않는다. 타협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끼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불행에 허우적대며 사는 사람이라서 더 그렇겠지. 순간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마음에 잠겨서 헤어나오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
그 시들에 덧붙는 타인의 언어와 노래들이 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건방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우상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제 "선생님"들은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도 그 자장에서 비껴가는 사람이 아직 있었네. 덕분에 하루 종일 울고 싶은 기분으로 지냈다. 불편한 사람들 낯설고 어색한 사람들 틈에서 숨쉬듯이 그 불편함을 의식하는 나 자신을 의식하면서. 시간이 이 불편함을 조금씩 지워줄 거라는 희망을 생각할 여력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있던 중에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네. 부끄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은둔해야 산다는 분이 나 때문에 여기까지 걸음하셨다는 것도. 나에게 그걸 물으러 온 것만 같았다. 왜 그랬냐고. 나한텐 뚜렷한 이유가 있는데도 그마저도 자신없어지게 만드는 저 물음 앞에서 나는 완전히 민낯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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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 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 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높새바람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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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도 종류별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코스모폴리탄은 로지, 버니니와 모엣샹동, D, 퀸즈에일은 재를 떠올리게 한다 잭다니엘과 호쎄꾸에르보, 아그와, 진로 두꺼비에 재, 꿀, 덕, 정목 오빠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늘 그렇지는 않지만 하이네켄도 종종 정목오빠를 떠오르게 한다 오빠가 하이네켄을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집에 가겠다며 일어서는 내게 냉장고에서 하이네켄 병맥주를 한아름 꺼내와 안겨주며 이래도 갈꺼야? 하고 묻던 그 날 그 순간이 사라지지를 않아서
앱솔룻은 나늘이와 재훈, 스텔라 아르투아는 쫑이다 기네스는 늘 귤이 생각나고 소주는 참 많은 사람들과 먹었지만 역시 재상오빠와 롱롱이 먼저 생각난다
그레이구스와 제이앤비, 코로나는 핌프다 윈저도, 조니워커 블랙도 그렇다 너랑은 도대체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 걸까 아그와도 종종 핌프를 떠올리게 하는데 같이 마셔서가 아니라 걔가 아그와를 싫어해서 그렇다 예거는 비교적 최근부터 지호다 제일 최근에 클럽에 함께 가서 그런듯 깔루아는 콩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콩과 ㅌ와는 한번도 술을 많이 마셔본 적이 없다 왠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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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쌤이 어제 수업시간에 백오십명 앞에서 내 씨디를 트셨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사랑스런 김승일의 시집과 같이 들고 말하셨다. "이런 것이 초과입니다"
이런 것이 잉여입니다, 하셨으면 폭소가 터졌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초과이고 잉여야. 나쁘지 않아.
그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잉여가 되기 위해 다음 수업에 (또)들어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대로 출석하고 제대로 듣고 있는 수업이 총 일곱과목중 세과목 뿐이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렇게 출석을 저조하게 찍는 것은 처음이다. 월수 5교시는 정말 안 들어간 날이 들어간 날 보다 많고. 음... 큰일났네.
대표님께 음반 발매 이벤트를 이장욱의 생년월일로 해달라고 하면서, 그 책이 나는 집에 있다고 착각하고 미리 산 것을 후회했는데 찾아보니 정오의 희망곡밖에 없어서 오늘 생년월일을 삼. 결국 살 운명이었던 거지.
모놀로그축제에 같이 작품을 올리게 될 것 같다. 패트릭 마버 <클로저>의 앨리스 독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연출을 해주기로 한 뿌디와 기획과 함께 조금 더 고민을 하겠지만 내 선택이 선행되는 일이니까. 다시 뿌디와 호흡을 맞추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할만큼 충분히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어떤 브랜드네임을 가질 수 있는 콤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리가 계속, 이 일을 계속 하게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어제 강남역에서 오빠와 모스버거를 먹었다. 사람들이 일본에 가면 꼭꼭 먹으러 간다는 햄버거. 먹어보니 엄마가 가끔 집에서 만들어주던 햄버거 맛이었다. 역시 엄마가 짱이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리뷰를 받아 읽고, 치부를 들키고 정곡을 찔린 것 같아 칭찬은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급격히 자존감이 낮아졌는데 어제 아리랑에 다녀오면서 원기를 회복했다. 더 깊어지라고. 가지고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과거에 수도 없이 들은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방송계쪽으로 인복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보르헤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싫어진다. 너무 멍청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