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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6.15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1
  2. 2025.01.29 영원한 천국
  3. 2024.01.15 결국 나의 일상이 곧 일생이겠지
  4. 2023.12.20 노동과 로또
  5. 2023.12.09 도마도재배자
  6. 2023.11.21 current status
  7. 2023.11.20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8. 2023.10.21 13 Reasons Why
  9. 2023.08.23 8년
  10. 2023.08.16 오펜하이머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슈 2025. 6. 15. 02:56
Posted by decemberjan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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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을 조금 적고 싶어서. 
나의 지난 여행기들을 어떻게든 털어보기로 결심하고 네이버 블로그에 천천히 포스팅을 하면서 어느 순간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과거를 사느라 현재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상상 해본 적 있거든. 20대 초반이었나...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과거가 비디오로 남겨져 있다면 그걸 보고 싶을까? 사실 과거 속 나는 내가 가장 많이 사랑했고 가장 많이 미워했고 가장 잘 알고 그러나 가장 궁금한, 가장 가까운 타인처럼 느껴져서, 그 비디오를 보고 싶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볼까? 그럴 순 없다. 스무살부터 지난 20년 간의 내 과거를 다 들여다보고 나면 나는 40살이 되어 있다. 그럼 그 비디오를 보는 20년 동안의 나는 비디오를 보는 존재로만 남아있는 거잖아. 
 
말도 안 되는 가정인 것 알지만 이 생각을 종종 떠올린다. 아무래도 내가 과거를 많이 돌아보는 인간이라 그런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는게 나쁜 특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있어서는 반드시 효율을 고려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이다. 내게 훨씬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의 나만이 나이기 때문에.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업보 같다. 
 
내가 다녀온 여행기를 정리하는 것도 일종의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인데. 그래도 여행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잊고 있던 시간과 감각을 깨워 나에게 새로운 자양분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핑계를 슬쩍 쥐어 본다. 
 
 
1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읽고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이오덕의 서신을 모은 편지 모음집이다. 
가난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된 요즈음에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지향하며, 심지어 가난을 대하여 뻔뻔하기까지 한 이들의 태연한 대화가 나로 하여금 낄낄 웃다가 별안간 부끄러워지게 만든다. 몇 달 전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며 가난에 대해 한 번 반추한 일이 있었는데, 권정생 작가와 이오덕 작가는 어른 김장하와는 또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다. 무엇보다도 예술가는 어른이 될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나를 더 건드리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권정생의 동화 투고, 출판을 위한 논의를 부지런히 적으며 끝없이 건강해야 한다, 아프지 마라, 무리하지 마라, 당신이 있어 다행이다, 당신이라면 다 괜찮다, 같은 걱정과 애정을 주고받는다. 권정생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권정생의 생활이 무탈하게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말 그대로 헌신하는 이오덕과 그에게 큰 위안을 얻으면서 모든 일을 일임하는 권정생의 모습은 어딘가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를 닮아있다. 그 와중에 책에선 이오덕이 고흐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위한 대의를 좇지만 딱 예술가들이 그러한만큼 배타적이다. 이오덕이 얼마나 권정생에게 기울어있냐면, 필요에 의해 권정생이 문학인 협회 같은 곳에 가입을 한 뒤 협회비를 내라는 연락이 가자 절대 협회비를 내지 말라고 하며 차라리 탈회했으면 한다. 받은 상금은 세금을 떼일 수도 있으니 절대 상금이라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책 절대 공짜로 나눠주지 말라고 한다. 얼마나 피땀흘려 쓴 글인지 사람들 모른다고. 당신만은 그래도 된다고.

앨범작업에 여념이 없던 최근이라 그런가.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는 점이 공교롭게 느껴진다. 이오덕은 권정생을 한없이 애지중지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에 있어 봐주기나 너그러움이 없고 권정생은 이오덕이 자신 때문에 동분서주하며 고생하는 것에 대해 내내 미안해하지만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며 계속해서 신세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둘이 공유하는 것은 아동문학의 의미와 소명이다.


2

1) 선생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분이 있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책이 나오면 상당한 부수가 나갈 것 같습니다만, 대중들의 유행 취미물이 아니어서 크게 팔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이지요. 

2)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만이 위로해 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답니다. 신 김치일망정, 쓴 된장일망정,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오는 가난한 이웃들을 저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답니다. 각혈을 해 가면서도 공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 아이도, 저를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가발공장 가 있는 그 애도, 방직공장 가서 나를 위해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고 있다는 그 애도, 아침저녁 찾아와서 보채는 이 많은 제 친구들은 나를 마다하고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3) 강의를 맡아 하신다니 안 될 일입니다. 그런 무리한 일 절대 하지 마십시오. 조금만 기다리시면 동화책 두 권의 고료와 인세가 나올 터이니 어려운 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곳 오지 마십시오. 걸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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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렁거렸는데 이 대목에서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오지 말라는 저 단호함이 애정의 농도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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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업을 꽤 열심히 하고 있다. 직장인처럼 출근해 작업하고 퇴근하듯 쉬는 며칠을 반복했다. 즉흥과 변덕으로 가득한 내 삶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앨범 발매와 프로모션 스케줄이 확정됐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는 와중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그 자체다. 이걸 놓치면 모든 일이 다 거대한 촌극에 불과하지 않나. 순간순간 두려움과 불안이 떠오르지만 그걸 떨치는 길 역시 작업 뿐이다. 내일은 (이제 오늘이네) 드럼 녹음이 있다. 오늘 베를린에 가서 셋이 함께 마지막 정리를 했다. S가 지난 몇 주에 걸쳐 준비를 잘 했다. 다사다난했던 멤버 사이, 결국 우리를 묶는 것은 음악이다.

And

영원한 천국

| 슈 2025. 1. 29. 17:28
Posted by decemberjanvier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을 읽었다. 정유정의 소설들은 잘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의 터치는 아니지만 궤를 달리하지는 않는 명징한 서사의 세계. 7년의 밤 이후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읽으며 그랬듯 이번에도 정신없이 읽었다. 몇가지 단상들. 

이 소설은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를 강력하게 은유한다. 장미 향에 길들여져 장미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과 사막에 남겨져버린 사람. 표면적으론 후자가 떠나간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는 남은 사람이다. 영원한 천국에. 그곳에선 아무리 귀여운 여우가 나타나도 혼자다. 그 사람이 기다리는 건 여우가 아니니까. 제이는 끝끝내 해상이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을 놓아줄 수 없었던 장미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린왕자 이야기를 비틀어 만약 그를 붙잡아 매는 것이 가능했다면? 혹은 그가 떠난 별의 세계가 실재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실마리가 된 것도 같다. 그리고 결국, 메시지는 클래식을 떠나지 못한다.

작가의 말대로 작가가 게임이나 미래세계상에 통달한 사람이 아닌 만큼 롤라의 세상보다 현실 속 이야기가 훨씬 단단하게 인간들을 붙잡는다. 그점에서 이 작품의 메시지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정유정표 로맨스 소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이야기.

다 읽고 나서 사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뒷부분이 너무 허무했다는 것. 해상의 오독이 아니라는 말은 변명 같다. 오독하지 않았다면 윤희가 맞았어야 했다. 반전이 가져온 충격은 너무 짧아서 더 얼얼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 뭔지는 알겠다.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을 대비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게 한쪽에겐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책 띠지에 '도망치려는 자와 기다리는 자'의 이야기란 소개가 있던데 기다림을 버팀으로 치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론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이야기였다. 

롤라의 설정이 튼튼하고 정교하지 않아 아쉬웠다.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가 아무 대가 없이 그 곳의 이주민들에게 봉사활동을 할리 없는데 그곳이 과연 평등이 실현된 곳일 수 있나? 또... 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말은 끝내 이해가 안 된다. 이미 롤라 이주민이 되어 드림시어터에 입장한 인간이 죽음의 공백 속에서 부유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끝없이 늙어가며 계속 사는 건가? 주변 인물들은 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는데 자신은 자연사조차 하지 않으며 영생? 그럼 그게 롤라와 뭐가 다르지. 그러다 강력한 의지로 사고를 일으켜 사고사 또는 자연사 또는 자살로 죽음을 맞는다면, 결국 그가 다시 눈뜨는 곳은 롤라일텐데. 그리고 백지 설계도 마찬가지. 단순한 백지 설계라면 그 안의 인간은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텐데, 롤라로 오는 선택만을 막는 설계를 심어달라는 요구인 건가?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 자체를 설계한다는 것은 애초에 이 모든 수고를 일으키는 이유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니 아닐텐데.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혹은 실제로 일어난 일)와는 달리 롤라로 오지 않고 견뎌보는 선택을 백지 위에서 내리게 되나? 롤라에서의 시간이 드림시어터 속에 들어가 재현하는 삶 속 자기 자신에게 아주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주는 걸까. 

그래서 처음에 남은 궁금증은 윤희의 것과 같았다. 35살, 모든 일을 겪고 돌아온 경주는 처음부터 지은을 만났던 걸까. 그런 지은과의 시간을 백지 같다고 표현할 수 있었던 걸까. 지은이 없던 삶이었기에 3년 뒤 롤라에 오는 걸 선택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롤라에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승주인지 지은인지 모호하게 남겨둔 서술 때문에 헷갈린다. 드림 시어터에서 지은을 만난 건 실제의 반복인지 아니면 그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닻의 출현이었는지 그 부분이 명료했으면 좋겠다. 작가에게도 의도가 있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설정 상 닫혀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후 윤희의 존재가 해상의 오독, 혹은 간과를 한번 더 증명하는 장치가 될 수 있지 않나. 경주의 야성은 결국, 스스로는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다고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결코 지나치지 못하는 데에 있었고, 끝없이 도망을 생각하면서도 맞서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그렇게 그가 손을 내민 상대들이 그를 이 땅에서 버티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라는, 이 소설에 대한 내 해석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지은은 드림 시어터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경주가 롤라로 이주하는 결정을 두고 실제와 드림시어터에서 상반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는 이미 한번 도망쳤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은이 실재했던 존재라면 또 다른 방식으로 경주의 롤라 행을 뒷받침한다. 자신의 기억력을 믿고 지은을 만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일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래서 너무 혼란스럽다. 내가 드림시어터의 설정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애초에 승주의 환영으로부터 전혀 달아나지 못한 경주가 어떻게 병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빚을 갚기 위해 더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긴 싫어서? 삼애원에서 달아나야겠다고 결심할 때만 해도 병원으로 복귀하는 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온갖 끔찍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베토벤, 랑이언니, 한기준 팀장, 박제이 등과 나눈 일말의 온기로 조금은 회복탄력성을 얻어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건지. 결국 지은의 실존여부와 경주의 롤라 행, 드림시어터 잔류까지 모든 것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되었다.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자기 별로 돌아간 것이 맞는지 영영 알 수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어린왕자가 슬펐던 건 어린왕자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미지의 결말보다, 그저 이 땅에 그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었다.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 카프카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해야 하는 건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이를 견디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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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라는 드라마에 매혹되어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이런 주제가 내게 영원한 숙제라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새삼 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에 대해. 그 안에서 모종의 아름다움을 보아야 하는 건 인간의 숙명이 그래서인 건 아닌지... 나는 좀처럼 동의하기가 싫은 것 같다.

And

결국 나의 일상이 곧 일생이겠지

| 슈 2024. 1. 15. 00:42
Posted by decemberjanvier

민채가 내 작업방 바닥에 실례를 했다 그래서 안방에 난민캠프처럼 차려진 내 악기들은 요즘 내 생활의 단면이다 새벽에 일어나 오후까지 세상을 여는 아침도 맞고 브런치 카페도 차리며 프로그램을 하고 집에 오면 몇 달 째 소변도 대변도 좀처럼 잘 가리지 못 하는 고양이를 챙기느라 치우고 닦고 빨래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몸이 축나는 것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 생계와 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 그래도 내가 웃는 건 민채가 내 옆구리에 몸을 기대오며 눈을 깜빡일 때 빨래처럼 널린 나를 추슬러 주는 반려인의 어깨에 내가 얼굴을 파묻을 때 별 거 없는 일상을 털어내라고 자꾸 찌르는 친구들에게 뒤늦은 고백을 할 때 기력이 다 됐다고 느낀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들뜨게 하는 음악 속에 빠져들 때 내가 아직 해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런 순간들이 내게 있다는 걸 돌이킬 때다 왜 태어났는지 궁금했던 날들은 지났고 이 삶에 별 의미 없지만 어차피 숨 쉬며 살게 된 것 내게 필요한 것도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사랑 뿐이란 결론을 잊지 말자고 환기하며 적는다

And

노동과 로또

| 슈 2023. 12. 20. 19:27
Posted by decemberjanvier

지금의 나는 호모 라보란스는 인류의 거대한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하며 노력에 비해 과한 행운을 얻고 싶은 사람이 되었지만 어릴 적에는 로또 당첨을 입버릇처럼 기원하며 일생 소원으로 삼은 사람들을 경멸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고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많은 맥락이 생략된 포즈였을지 모르겠으나 내 눈엔 그랬다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삶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 가장 주요한 전환점이 로또 당첨이라면 그 삶이 얼마나 궁색한가 싶은 것이었다 농담이라면 재미없고 진심이라면 좀 부끄러울 일 아닌가 싶었지 어쩌면 그때 나는 로또 당첨보다 더 극적인 일을 내 삶에 일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다시 말하자면 로또 당첨보다 근사하고 멋있는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창대한 꿈이 있었던 걸까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변했다 그러나 내가 한 때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그저 자립에 대한 의지 같다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길 바라는 마음 어떤 외부로부터의 영향과 타인의 권세 아래 기생하며 남의 힘을 내 것처럼 휘두르며 사느니 미약하고 하찮을지언정 나 자신만의 힘에 기대 조용하고 어리숙한 삶을 살겠다는 어쩌면 여전히 순진하게 들릴지 모를

And

도마도재배자

| 슈 2023. 12. 9. 17:37
Posted by decemberjanvier

죽음 충동을 누르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혼자 나를 사랑했다 미워했다 잘해줬다 학대했다를 반복하며 살아오던 사람에게 우리가 마치 내일 만날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어떤 의미일지 함께 보낸 시간 다 합치면 한 달 남짓 되려나 평생을 바꿔버린 그 한 달 사이 과거 몇 번이고 저도 모르게 나를 살린 운명을 알게 되는 인연과 평생 끝없이 외로웠던 이를 쥐면 터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살뜰히 아끼고 보살피는 동시에 매일같이 이별을 준비하는 이별연습 이야기 이별 후 어떤 모습으로 무너져 내릴지를 목격하고 그 뒤에 남겨질 사람을 위한 방벽을 세우는 속수무책의 연인들 어떻게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 눈이 붓도록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어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지만 한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고 챙기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만은 나의 현실이다

And

current status

| 슈 2023. 11. 21. 21:19
Posted by decemberjanvier

슬픔에 유효기간이 어디있어
그러나 생존이 상태라는 건 알겠다

And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 슈 2023. 11. 20. 22:03
Posted by decemberjanvier

누구에게나 있겠지
그러니까 나로서는 가소롭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충만함이랄지 위로랄지 그런 것들에 기대어 이어가는 삶이 있는 거지 내가 그런 것들을 평가절하하며 그 삶의 가치가 사라지도록 만들 이유도 권위도 권리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또 그러나 그 삶은 나의 삶이 아니기에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내게 다소 버겁다

And

13 Reasons Why

| 슈 2023. 10. 21. 14:32
Posted by decemberjanvier

시크릿 가든 다음으로 몇 번을 잠겨서 본 시리즈가 아닌가...
내가 왜 이렇게 여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나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제대로 된 애도의 형식을 갖춘 이야기에 매료된 것 같다. 
매료라는 말을 쓰기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이건 결국 매료가 아닌가. 
 
(먼 미래에 기억력이 감퇴했을 나 자신을 위한 Spoiler Al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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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리즈를 볼 때에는 시즌3 자체에 크게 분개했다. 가해자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설정이었으니까. 
다시 보면서는... 오히려 이 시리즈 제작진의 신념에는 일관성이 있다고 느꼈고, 그 신념에 의해 희생된 듯 보이는 브라이스보단 몬티의 결말 때문에 화가 났어. 

시즌4를 위한 밑밥이었다고 쳐도, 우리가 몬티를 이런 식으로 보내는 게 맞나? 악인에게, 그 악인의 벌어진 상처에 그가 저지르지 않은 일까지 쑤셔 넣어서 그를 보내버리는 것이. 심지어 그 악인조차 이 시리즈가 그토록 '나아질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불운한 청소년인 것마저 인정하면서. 이 극에서 다뤄지는 죽음들이 모두 너무 유사성이 강해서, 이렇게까지 죽음이 난무하게 만들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을 품게 되었달까. 그러니까, 브라이스도 몬티도 너무 손쉽게 "처리"된 느낌이라는 점이. 마치 아무리 참회해도 결국은 자기가 쌓은 업보에 따른 잔인하고 냉혹한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엉성하게 위장해선. 그 시리즈는 그런 얘길 하려던 게 아니지 않아? 사실 해나의 죽음도 정말 한없이 안타깝고 애달픈, 아무리 손을 뻗어도 붙잡을 수 없는 그 허망함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는데, 이런 죽음은 해나 하나로 끝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 시리즈가 그 안의 아이들이 모두 '아이들'이며, 사람은 누구든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갖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그러니까 살아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했다면.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브라이스와 몬티를 이용해 버린 느낌이랄까. 그래 꼭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이를 희생시키는 편이 쉬웠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뿐더러... 악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껴야 하는데? 내가 어떤 비통한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부정하고 싶은 상황 속에 놓인 피해자들은 그 죽음이 이중으로 힘들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죽음은 무거운 거잖아. 죽음은 어떤 면죄부도 되지 못해. 그러나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치러버린,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 한 인간을 어떻게 그 전과 같이 미워하고 단죄해. 악인의 죽음은 그가 속죄할 기회를 소거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단죄 혹은 용서할 기회마저 없애는 사건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무게는 고스란히 생존한 사람들이 감당, 혹은 소화해야 할 몫으로 치환된다.

그럼에도 나는 브라이스의 죽음을 헤쳐가며 그가 마지막 나날들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살았는지를 짚어간다는 점에서 조금은 흐린 눈을 해보려고 했거든. 그런데 몬티를? 그럴 듯한 사연과 비극성까지 부여해 놓곤? 그런 몬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걸 클레이가 방조했다고? 클레이의 가장 큰 강점은 아무리 싫은 사람에게도 모종의 정의가 닿도록 애쓴다는 점이잖아. 배타적인 영웅컴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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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3의 가장 큰 문제점은 클레이가 너무나 시즌1, 2 속 클레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건 (클레이를 잘 모르는) 아니의 시점이 이야기를 끌고 간 탓도 있을 것이고, 제작진의 판단으로 클레이의 캐릭터를 무너뜨린 탓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한 10대처럼 질투에 사로잡히고 눈이 멀기도 하는 청소년으로 그리고 싶었던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그게 맞나? 클레이가 드라마 후반부에 묘사된 사람만 같았더라면 해나는 클레이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 같다. 일단 클레이는 결코 평범한 10대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불안장애를 겪어왔다는 설정부터 클레이는 다른 10대 또래들과는 다른 출발선에 선다. 심지어 그 배경을 떠나서도 클레이는 훨씬 조심스럽고 섬세한 사람이었잖아. 자신 만의 어떤 상이 있고, 질투와 불안을 강하게 느끼는 캐릭터일지언정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사람이었잖아. 그러니까 저스틴도 잭도 타일러도 클레이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잖아. 해나와의 사건이 클레이를 바꿔놓았을 걸 감안하더라도, 굳이 클레이를 이렇게까지 바보로 만들어야만 했나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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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는 이 시리즈 몇 번을 다시 봐도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고, 그 점은 아니에게도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전지전능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서 들려주는, 외부인. 남의 말을 옮기면서, 마치 자신은 외부인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구술하는 아니. 아니는 이 시리즈의 메기였고 나는 메기가 싫었다. 문제는 시리즈 내의 아이들은 아니를 친구로 받아주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인데. 아이들은 전학생과 금방 친해질 수 있지만 이 아이들도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또 아니는 정말 이 아이들의 사회에 충분히 녹아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내게 남는 것이다. 아니가 잃을 것이 있었던가? 아니는 어떤 면에서 토니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이주민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토니보다 더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요소였을 것이다. 이런 삶의 배경을 포함해 가장 큰 두려움이 엄마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들키는 것인 아니가 다른 아이들과 같은 위치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친구관계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외부인이기도 하고, 어쩌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건 친구관계가 아니에게 있어 크게 대수로운 고민은 아니었다는 부분에서, 아니는 다른 아이들보다 강한 존재이지만 결국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아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인이었어. 난 이게 연출의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마치 아니 역시 이 아이들 중 하나가 된 것인양 위장을 하면서 불협이 발생한게 아닌가.
 
예를 들어서... 아니는 제시카에게 자신과 브라이스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친구인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잘못했다. 네가 친구라서 털어놓는다"고 말한다. 나는 사실 여기까지도... 왜 굳이 그걸 털어놓지? 저런 얘길 꼭 할만큼 제시카와 긴밀하게 지내지도 않던 중이었고, 저 사실을 털어놓든 털어놓지 않든 아니에겐 그닥 큰 죄의식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고백 직후에 제시카의 반응 한마디가 있기도 전에 아니는 이어서 말한다. "너도 너의 가장 어두운 비밀 / 최악의 실수를 내게 털어놓지 않을래?" 나는 이게 정말 교활한 화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는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친구 남자친구를 뺏은 것도 아니고, 브라이스와 친하게 지낸 것을 후회하지도 않고, 정직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제시카를 절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일(제시카 중심으로 본다면 ‘친구를 성폭행한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 본인 중심으로 보자면 ’죄를 참회하고 있는 범죄자‘와 친구가 된 것)을 마치 자신의 일생일대 가장 큰 실수인 것처럼 말하면서 제시카에겐 너 사람 죽이지 않았니 나한테 털어놔봐 하고 말하는 거야... 너무하잖아. 내가 아는 제시카라면 황당해하면서 아니에게 선을 긋고 그 자리를 떠나고 아니를 싫어하며 지냈을 텐데 놀랍게도 제시카는 마치 누군가 자신의 자백을 종용하길 기다렸다는 듯 아니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가... 너무 면밀하고 촘촘하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뒤로 갈수록 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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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즌4를 보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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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스틴의 죽음 같은 걸 나는 본 적이 있다. 언제냐면 비밀의 숲에서 영은수. 힙하게에서 김선우. 내내 고통만 받다가 이제야 좀 빛을 향해 나아가려던 찰나에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고 스러지는 무력한 죽음을 왜 내가 가상현실 속에서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스러져가는 저스틴 곁에서 클레이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못됐다. 클레이 역시... 그럴 수 있는, 덜 자란 아이니까. 그렇지만 왜 그 모습을 형제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켜야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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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전 시즌을 다시 한 번 끝마쳤다. 시즌4는 정말 엉망이었다. 여러모로 모든 것이 과했고, 극단적이었어. 앞에 세 시즌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충분히 그랬는데... 서사가 어느 고점을 지나고도 내려가야 하는 시점을 잃어버리면 어떤 종류의 Walkout이나 반달리즘을 보여주는 건 미국 드라마들의 클리셰인가. 오뉴블을 떠올리며 적는 문장이다.
 
나는... 그래도 그 애들의 졸업까지 지켜볼 수 있었던 것에 약간의 의미를 두기로 한다. 
 
욕을 잔뜩 해놨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정말 사랑한다. 한 인물의 죽음을 이토록 긴 시간에 걸쳐 이토록 샅샅이 들여다보며 애도하는 것. 애도와, 애도의 형식과, 애도에 들이는 시간과, 그 끝에서 살아보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그걸 내게도 절절한 경험으로 안겨주는 이야기였기에. 

And

8년

| 슈 2023. 8. 23. 22:04
Posted by decemberjanvier

 

8년 만에 친구를 만나니 그애와 함께 정지되어 있던 그 때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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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던 한 때에 내가 지극히 사랑했던 이들을 더는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나이드는 것의 가장 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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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애태우며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는 것이 더 큰 비극 같기도

And

오펜하이머

| 슈 2023. 8. 16. 20:36
Posted by decemberjanvier

어제 오펜하이머 개봉 당일 아이맥스로 보고 싶어서 보고 옴
벌 받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후회 대신 벌을 받기로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나는 좋았다
그게 나름의 책임감, 나름의 윤리의식을 지키려고 한 모습 같아서. 그런데 그게 속죄 같지는 않고...
존엄을 잃지 않고 벌 받기를 선택하는 인물을 우린 얼마나 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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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셸비가 오펜하이머로 태어났다면 저런 모습이었을 것 같아서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이제 킬리언 머피를 보며 토미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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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놀란의 명과 암이 뚜렷하게 드러난 영화였다

못하는 건 정말 너무 못하고 잘하는 건 정말 누구보다 잘하는... 속수무책의 낭만주의자, 로맨티스트가 아닌가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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