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주 오랜만에 일기 비슷한 것을 써보기로 한다.
1
지난 금, 토, 일. 몇 년 만에 펜타포트에 갔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제대로 락페스티벌에 간 건 처음 같다.
간간히 빵이랄지 뭐 이런 저런 공연장들은 다녔고 부락도 두 번인가 다녀왔지만 내가 정말 가고 싶어서 갔던 공연은 손에 꼽힌다. 대개 일 때문이었으니까.
2
이번은 정말 오랜만에 든 이상한 마음 때문이었다.
매일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에 허덕이며 지내던 조연출 시기를 지나 처음 홀로서기를 하면서 맡았던 프로그램이 내게 좀 벅찼다. 근 2년 정도를 눈앞에 있는 문제들만 치우며 버티다 그 팀을 떠나보냈다. 어떤 뿌듯함, 자부심 따위를 느끼기도 했지만 버겁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매일을 견디듯 지냈고, 반 뼘 정도 더 해보던 나의 결과물들이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일은 없기 때문에. 그땐 그랬다. 일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못 보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으니까. 잠깐씩 찾아오는 짧은 평화 속에서 나를 보듬어보려는 노력도 했고,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챙기려는 시도가 불가능했거나 부재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실패했고, 그 실패들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끝났을 때 좀 홀가분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 후 한 두 달 정도는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일도 쉽지 않았고 (여전히 쉽진 않다) 달라진 나의 생활 환경에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6월 말 무렵이었나. 주말에, 금토일 주말 사흘을 다 어딘가에 쏟고도 그 다음주에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하자면 그간 회복이 필요한 상태였다는 것을.
3
물론 취업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란 걸 안다. 생계를 위해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이 생활이 언제 끝날 지 기약이 없다. 또 그 일이 매일같이 뭔가를 제작하고 평가받는 일이라는 점에서 내가 더 긴 호흡으로 느리게 천천히 더 공들여 하고 싶은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건 그저 평범한 사실이니까.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이 환경에 적응하되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니까. 아 물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안다. 단지 둘 중 어느 쪽이 나를 덜 불행하게 하느냐 사이에서만큼은 내가 분명히 아는 바가 있다.
아무튼... 지금의 에너지와 여유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또 원인도 헷갈리지만 - 마치 20년 전 음악과 패션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듯 나도 한 10년 만에 다시 그 시절의 기분을 돌려받은 건 아닐까? - 인풋에 대한 나의 욕망이 조금 커졌고, 또 인풋을 받을만 한 여유가 내 안에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난 6월 즈음에.
4
그래서 펜타포트를 예매했다. 코로나 전후로 페스티벌 문화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시대라 아마 펜타 운영진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런 고민이 뚜렷하게 드러난 라인업이었는데, 내겐 오히려 좋았달까. 그러니까, 나는 검정치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바이바이배드맨 멤버들이 있는 백예린의 밴드가 궁금했고, 키린지와 스트록스가 보고 싶었다. 이오공이 무대를 어떻게 할지 목격하고 싶었다. 김창완 밴드의 어떤 노래들을 라이브로 듣고 싶었다. 대단한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이 아니라, 그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던 무엇들의 오늘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5
이번 펜타.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펜타는 펜타니까. 대세에 지장 없는 것들은 차치하고 갈 길을 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팀들은 못해도 좋았고, 어떤 팀들은 여전히 못해서 좋았고, 또 어떤 팀들은 잘해서 좋았고, 어떤 팀은 그저 좋았다.
키린지는 그 자체로 일본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으면서 조금 슬펐다. 사실 나는 뭘 하든 어떤 음악을 듣든 늘 조금 슬프기 때문에 이 감정이 중요한 건 아닌데, 반려인의 마지막 코멘트 때문에 더 그렇긴 했다. 그러니까... 너무 잘하고, 그래서 들뜨고, 나를 신나고 재미있게 만들었지만, 이 음악은 너무나 20년 전 시부야케이가 정점을 찍던 시절, 일본 경제가 정점을 찍던 시절의 음악 그대로이고, 그걸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음악의 미덕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나는 휘시만즈와 폴라리스를 사랑하는데, 키린지가 그들과 동시대 밴드임에도 그들만큼의 광기를 전파하진 않고, 그러나 여태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이 아이러닉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따위 감상은 모두 사후적인 것이고, 현장에서는 그냥 다 좋았다. 특히 일요일에 보았던 진저루트와 김창완 밴드 때문에 한 생각인데. 음악이 잘 짜인 직조물처럼 완성도 높고 연주자들이 (특히 드럼앤베이스가) 탄탄하면 나머지 것들은 매우 부수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신이 나거든.
그런 면에서 이오공은. 그냥 별 얘기 할 필요도 없이 거침없고 거리낌없는 무대를 보여줬다. 무대도, 음악도, 조금은 긴장 돼 보이던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와 포스쳐도. 뽕이라는 그의 화두 특성상 이박사부터 엔카 트로트 옛날 방화 만화영화 그리고 K-POP과 디제잉까지 모든 게 물 흐르듯 재현되고 접목되어 재탄생하는 이상한 현장을 목격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음악을 정말 엄청 열심히 하는 미친 사람처럼 보여서 좋았다. 괜한 쿨함을 전시하는 느낌이 아니라... 결과물은 너무나 쿨하지만 하는 사람은 순수해 보일 만큼 열심인 것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인 쿨함이,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힙'이 드러난다고 느꼈달까... 다른 걸 다 떠나서, 락페에 DJ가 오면 한 순간에 음악이 단조롭고 지겨워지는 순간을 수없이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이오공은 그냥 좋았다. 그냥 나를 신나게 해 줘서 그걸로 너무 좋았어.
스트록스는 여러가지 면에서 꽤나 욕을 먹던데 다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냥 괜찮았어ㅋㅋ 락페에 술 취한 롸커 한 명쯤은 무대에서 볼 만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주저리주저리 개소리 시작하기 전 몇 곡은 연주도 노래도 정말 좋았다. 이후에 줄리안이 여러모로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밴드 연주는 좋았고 그래서 난 괜찮았다. 난 노래 못 하는 보컬들에게 익숙하니까. 이건 꽤나 자조적인 발언이다... 아무튼 자기가 뭘로 잘 팔리는지 매우 잘 알고 있을 줄리안 카사블랑카스를 생각하면 스트록스는 몹시 못돼 처먹은 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멤버들이 최선을 다한 걸 생각하면 그저 통제력을 상실한 팀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 뒤로 갈수록 뭔가 사운드도 무너지고 보컬도 뮤너지고 피치도 무너지고 박자도 무너지고 팬들의 억장도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긴 했는데... 나야 뭐. 17년 만에 한국 왔다며. 17년 전에는 못 봤고 아무튼 오늘 봤으니까 됐어 느낌. 연주는 내내 좋았어. 보컬에는 대체로 늘 기대가 없다. 애초에 나는 음악을 좋아하면서 해당 팀의 얼빠였던 적은 없다. 그랬다면 제프 트위디를 좋아하진 못했겠지.
6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검정치마가 아니었을까? 물론 과거 내가 그 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렇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꽤 오래 그를 놨고... 너무나 커져버린 지금 팬덤 속 팬들에 비하면 나의 애정은 아주 하잘 것 없는 것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내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흘렀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이 가득했던 한 시절이 있었고, 갔고, 남은 것은 얼마 없다. 누군가는 더 큰 물을 향해 표표히 떠나갔고, 누군가는 도태되었고, 누군가는 다른 행복을 찾았고, 누군가는 버티고 있지만 그 시절과 같을 순 없는 거니까.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한 시절을 흘려보낸 사람이 되었으니까. 검정치마를 보면서 잠깐 울컥했던 이유는 그래서였을지 모르겠다. 내가 이 음악을 사랑했구나,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이 이 음악에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고마웠다. 내가 이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근사한 모습으로 남아준 것이. 남아줬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멋있게 성장해 준 것이. 아니, 성장이란 말은 내가 뭐라도 되는 사람의 자리에서 하는 말 같잖아? 싶을 만큼 그냥 멋있어서. 그냥 멋있어줘서 고마웠다. 정말 솔직한 마음은 그랬다. 어떤 면에선 나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사람 하나가 아직 여기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나 떳떳하고 멋있다는 사실이, 아니 그냥, 그냥 너무 잘해서. 미워하는 마음도 잊을 만큼 잘해서 좋았어.
7
The Volunteers 무대는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알게 됐던 새 밴드들 중에 TRPP를 가장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그 시절 바바맨이 꽤나 좋은 합이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 나는 지금의 발런티어스보다 바바맨이, 혹은 TRPP가 더 좋긴 해. 김윤아의 그 무엇이 느껴지는 무대를 조금 멀리서 듣기에 나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마실 나가는 느낌으로 잠깐 가서 진저루트 조금 구경하고 김창완 밴드의 몇몇 곡만 듣다 산뜻하게 집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진저루트가 너무 신나버렸고 김창완밴드가 연주하는 모든 노래를 알아버렸다. 금요일 토요일 이상으로 취객이 되어 집에 돌아온 일요일. 그날 해야 했던 모든 일을 작파하고 놀다 잠이 들었다. 이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반려인이 있다는 것에, 잠에 든 그의 얼굴이 문득 사랑스러웠다.
8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얼룩'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아티스트들, 그러니까 인간의 기행, 잘못, 무지, 오만, 그릇된 가치관, 악랄하거나 폭력적인 의도가 담긴 작품, 그리고 추문 같은 것들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것들을 빛바래게 만들곤 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잣대 앞에서 티끌 없이 깨끗할 수 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나만의 선을 만들어보려는 이성적인 시도는 곧 본능적인 거부감에 의미를 잃었다. 지극히 사랑했던 음악에 잡념이 섞여 말할 수 없이 슬퍼졌던 날들이 너무 많았다. 대충 좀 털어내는 데에 이만한 시간이 걸린 것도 같다. 사회적 맥락 밖으로 예술을 끄집어 내는 건 여전히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저 무대를 채우고 있는 저 사람과 이 음악의 이 순간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시간 속에 아주 일시적인 공간을 만들어 위치하고 있는 거라고 믿어버리고 싶었다. 음악이 나를 압도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월요일이 아주 힘들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